161106 수치심과 죄책감은 다르다

죄 지은 자는 본능적으로 부끄러움을 가진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먹고 난 뒤에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 나무 잎으로 그 곳을 가렸다. 하나님이 평상시와 같이 그들에게 다가왔지만 그들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나무 뒤로 숨었다. 성경은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어긴 것 때문이며 이로서 죄가 그들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인간은 아담 이후로 죄책감이 늘 마음 중심에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첫 순간에 그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지었다는 외침을 듣게 된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가정교사라 하였다.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구원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죄책감은 우리로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우리 고개를 돌리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헤로 성령님의 이끄심이 없으면 인간은 죄책감으로 깊이 시달리다 깊은 웅덩이에 빠져 버리기고 만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런 죄책감을 공교한 말로 별 것이 아닌 수치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절대적인 진리도 없고 절대적인 신도 없이 자기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는 오직 자기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생의 목표가 그를 이끌어가는 신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곳에는 객관적인 죄라는 것이 더 이상 있지 않게 된다. 다 자기 앞에 놓인 것을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정해놓은 규정을 지키는 것이 생에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객관적인 죄에 대한 관념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수치심만이 전보다 더 강하게 인간의 삶을 좌우하고 있다.

수치심은 죄책감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보존의 영역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자기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자기 정체성을 부풀어 말하였거나, 자기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 놓은 것에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감추고 싶은 자신의 죄가 더 이상 우리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삼게 된다(소경으로 태어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