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4 언약의 효력은 죽음으로

본문: 9:16-22

 

16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18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술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20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땅의 장막과 하늘의 장막, 제물에 있어서 짐승과 주님 자신의 몸, 죄를단지 기억나게 하는 것과 죄를 사하는 것의 차이다. 그래서 옛 언약보다 새 언약은 더 좋은 것이며 더 아름다운 것이며 더 좋은 것의 중보자로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언약은 어떻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1.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있다(16-17)

1)헬라어의 디아데케는 언약과 유언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번역자들이 같은 단어를 언약이라 하였다가 이제 유언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그 의미를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실재 언약은 피로 세워진 것이며 또한 그 언약의 효력은 죽음으로서 그 효력이 드러나게 된다. 아브라함과의 언약, 시내산의 언약,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새 언약 모두 피로 맺은 언약이며 그 언약은 피로서 그 효력을 나타내고 있다.

2)주님은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에게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피 곧 언약의 피라하셨다. 이러므로 주님의 죽으심은 바로 새 언약을 세우시기 하고 또한 언약을 이루시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은 유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3)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죽으심을 통해 죄를 사하시고 또한 그 자녀들에게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업을 물러받을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이는 오직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유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4)그리스도인이 받을 상속은 약속된 영원한 기업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약속된 것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영원한 것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하였다(벧전1:4) 도한 우리가 받을 유산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하늘의 영광이다.

2. 왜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죽으셔야 했는가? 죽어야 언약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피흘림으로만이 죄사함이 있기 때문이다.(22)

1)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첫 언약인 율법의 제사범에서 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이미 하나님이 선포하신 대로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다. 죄를 지은자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죄인은 피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2)율법은 피의 제사를 통해 장차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제사를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다.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주님은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가장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받으셨다. 이로서 우리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로 죄에서 해방되게 하셨다.

3)왜 죄값으로 피를 흘려야만 하는가? 피는 생명이기에 피를 흘림은 곧 사망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준다. 죄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처참한 죽음과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는 심각한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을 거부한 댓가이기도 하다. 인생이 하나님을 버리면 결국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신의 실재를 잃어버리고 헤매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4)그래서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 밖에 없다. 그의 거룩한 피만이 우리를 죄에서 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없이 인간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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