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12 잃은자에서 찾은 자로

본문: 눅19:1-1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고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리고성의 삭개오의 회개 사건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하신 말씀의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이었고 또한 십자가 사역은 바로 잃은 자를 다시 찾고자 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게 된다.

1. 우리의 이름을 아시는 분이시다.

1)예수님은 돌무화과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보려고 한 사람을 이미 알고 계셨다. 나무 밑으로 지나가다가 멈추어서서 위로 쳐다보시면서 “삭개오야”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깊이 알고 계신다.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 우리에서 이끌어내는 것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아신다.

2)태어나기 전에 세례요한의 이름을 부르신 하나님이시다.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서 기도하던 것을 이미 보셨던 우리 주님이시다.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우리 이름을 부르신다고 하셨다. 우리 한 사람이 하나님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존귀한 자로 여기고 계시는가!

3)우리는 하나님의 눈에서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우리 머리털 수까지도 세시는 분이시다. 바로 그 분이 창조주이시고, 영생의 근원이시다. 그 분이 우리를 아시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떠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가 늘 혼자가 아니다.

2. 우리의 낮은 자리로 오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분이시다.

1)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는 ‘정직한 자, 의로운 자’라는 자기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로마 정부에 앞잪이 노릇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자로 죄인취급을 받고 있었다.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수근거렸다.

2)예수님은 부와 권력에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삭개오의 마음을 아셨다. 그리고 삭개오의 낮은 그 자리에 내려오셨고 그와 함께 하셨다. 이것은 주님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구원의 사역을 그림자처럼 보여주고 있다.

3)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불경건한 자요 원수요 연약한 자였다. 그러나 이런 자를 위해 우리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셨다. 이로서 우리가 잃어버린 자에서부터 벗어나 하나님 앞에 찾아진 자가 되었다.

3. 우리를 잃은 자에서 찾아진 자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1)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유하심으로 삭개오의 삶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재물이 중심이었던 자가 이제 예수님이 중심이 되었다. 재물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하였다. 예수님인 이런 삭개오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시고 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셨다.

2)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잃어버린 자였지만 이제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찾아진 자가 되었다. 이것은 곧 우리 주님의 마음에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나님의 구원의 열매를 보셨기 때문이다.

3)우리의 이름을 아시는 주님,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주님, 잃어버린 자에서 다시 찾은 자로 바꾸시는 주님을 오늘 우리 마음에 다시 깊이 새기자! 세상 어디에도 마음에 참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오직 주님이 우리 마음 중심에 오실 때 하늘의 것으로 가득 채워진다. 하나님 앞에 찾아진 자로서 하늘의 기업을 마음에 사모하면서 주 앞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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