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23 장터 아이들 비유

본문: 7:31-35

 

"31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렀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라미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


주님은 세례요한의 사역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사역도 따르지 않는 이 세대의 사람들을 장터에서 놀이는 하는 아이들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다. 오로지 자기만을 고집하면서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은 자기 스스로 가진 지혜로 그 결과가 옳은지를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1. 이 세대의 사람 종교지도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세례요한의 사역이 못마땅하였다.

1)세례요한의 사역의 성격은 장레식하는 것과 같았다. 자기 죄를 회개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우는 사역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친 삶을 살았다. 광야에 살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고 약대 털옷을 걸쳤다. 그는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곧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을 외쳤다.

2)회개를 외치는 세례요한의 사역은 금욕의 삶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먹지 아니하고 마시지 않는다 하면서 귀신에 사로잡혔다고 하였다. 약대 털옷을 입은 것은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임을 증거해 주었다. 곧 엘리야도 약대 털옷을 입고 우상종교 바알을 전하는 아합을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3)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율법으로 의로운 자로 자처하였기에 세례요한이 외치는 회개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복받은 자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의 장레식같은 사역에 동조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장례식 놀이에 가슴을 치면서 울지 않은 아이와 같았다.

2. 이 세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1)예수님의 사역은 먹고 마시면서 기쁨을 가져다주는 사역이었다. 세리와 창기와도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러니 세례요한과는 완전히 다른 사역으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 곧 이 세대의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창기의 친구로다하면서 비난하였다.

2)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슬픔이 기쁨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고 아픔과 고통이 치유와 회복이 되었다. 그러니 그 곳에 감사와 기쁨이 있게 마련이었다. 귀신이 주님의 명령에 떠나갔다. “귀신이 떠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느니라주님은 이런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지금 현재 임하였음을 선포하셨다.

3)주님의 사역의 성격이 바로 회복이며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이었다. 그러니 자연 그 곳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이 생각하기는 율법은 엄격하 삶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오히려 정도에 지나치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죄인인 세리와 창기와 어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겼다.

3. 이 세대 사람들의 오만, 교만을 지적하셨다.

1)먹지도 않고 마시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먹고 마신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오직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행하시는 사역의 성격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였다. 오직 자기 생각과 주장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독선적이고 편협적 생각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2)세례요한의 금욕적 사역과 예수님의 잔치 사역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의 두 가지 모습이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의 시간이 있는가하면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로 생명의 회복의 시간이 있다. 이는 우리 삶에 있어서 끊이지 않는 두 가지 모습이다.

3)우리도 이런 오만과 교만,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은혜뿐이다. 우리 눈이 우리 자신중심에서 주님중심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되었고 성령께서 이를 깨닫게 해 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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