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8 외모와 중심

본문: 삼상16:6-7,11-13

 

 

6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보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11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하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사물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울이 하나님의 시험에 실격하여 사무엘이 슬퍼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다. 이새의 집으로 가서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에 왕이 되도록 훈련하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보낸 곳이 사울이 있는 왕궁이었다.

1.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이 있다.

1)세상이 보는 눈은 외모에 치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중심을 보신다. 외모는 용모와 신장, 배경출신 등을 의하겠지만 중심은 신앙 인격과 진실성을 의미한다.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2)“눈은 몸의 등불이다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눈이 성하면 몸이 밝을 것이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다. 육신의 눈과 몸의 관계가 그러한 것같이 영적 눈과 영적 생명도 그러하다. 그런데 인간의 총명은 어두워졌고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짐과 감각없는 자로서 방탕하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것이 인간이다(4:18)

3)예수님은 나면서 보지 못한 소경을 눈뜨게 하심으로 진정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고 본다고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함을 말씀하셨다. 자신이 영적 소경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 오면 영의 눈이 열리겠지만 스스로 본다고 하는 자들은 영의 눈이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9:39-41)

2. 새롭게 된 중심은 반드시 자라가야 한다.

1)중심은 그래서 반드시 새롭게 되어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새 마음을 받아야 한다. 모세도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사도 바울도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 하면서 영적 할례를 말하였다.

2)그의 지식에서 자라야한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2:52) 사도 요한은 영적 의미에서 아비와 청년과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만 이해하는 젖먹이 어린아이와 스스로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자로 구별하였다. 영으로 거듭 태어났다면 성장해야 한다.

3)고난과 환난은 영적 성장의 배경이 된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게 된다. 고난을 통해 육신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만을 위해 살라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사는데 이는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다.

3.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무엇을 알게 되는가?

1)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와 영광의 풍성함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된다(1:18) 그래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의 율례를 보게 하소서 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했다. 주께서 눈을 열어 주실 때에야 알았다.

2)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 죄악된 마음으로는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의 말슴을 보아도 그 크신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실 때 그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3)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신다. 중심이 바뀌지 않으면 마지막 시대의 환난의 시대를 이길 수가 없다. 오직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오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힘쓰야 한다. 날마다 세마포를 빠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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