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22 히스기야의 기도

본문: 사38:1-8

“1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4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6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이는 여호와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이룬신다는 증거이니라 8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로 통해 병으로 인해 죽고 살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벽을 향하여 보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을 들으시고 눈물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연수를 15년 연장시켜 주셨다.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

1.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기 위해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1)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 속에서도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이겨내었다. 많은 왕들 중에 몇 되지 않는 믿음과 기도의 왕이었다. 그런데 이런 왕이 죽을 병이 들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제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는 사형선고와 같은 선포를 들었다.

2)히스기야는 원망과 불평, 낙심보다 오히려 오로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오로지 부르짖었고 눈물로 통곡하였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시고 병을 치료하여 주셨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서 나라를 번영케 하셨다.

3)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 히스기야는 병에서 낳았음에 축하하기 위해 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기 보화를 다 보여주면서 자기 영화를 자랑하기만 하였다. 위급할 때는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낫고난 후에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내세우는 교만한 마음이 그를 사로잡았다. 우리의 기도도 이렇게 부족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 중심을 아시면서도 기쁘게 받으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2.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은 곧 장래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죽음에서 구원하실 아버지께 기도와 눈물로 부르짖었던 우리 주님을 보여주었다.

1)히스기야의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와 눈물은 하나님의 눈에서 중첩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표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기도와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곧 하나님께 온전치 못하여 자기 영화를 자랑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래 오고 올 모든 그의 백성들을 위해 드려진 주님의 기도와 눈물이 이것을 온전케 하였다.

2)히브리 기자는 예수님은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은 곧 그의 백성의 죄값을 치루기 위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죄인같이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아뢰었고 그것이 이루어졌다.

3)오늘 우리가 아무리 기도한들 하나님께 온전한 기도가 되겠는가? 히스기야 만큼이라도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치면서 기도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예수님을 함께 보시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은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셨다.

1)우리는 우리 권위와 능력과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그것이 공로가 되어 응답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주시면서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면 얻으리라 약속하셨다.

2)그래서 기도해서 응답받았다고 해서 교만해 질 것이 아니다. 우리 기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주님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자랑거리도 아니고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3)오히려 우리를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왜 기도에 감사가 중요한가? 나의 부족한 기도라도 주님의 기도로 인해 온전하게 되고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기도하므로 세상을 이기며 자신을 이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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