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04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된 본성

동일한 사건이라도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느낌과 반응은 다르게 나타난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좋은 사람이라 여기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얼굴조차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음악을 들을 때에 오는 느낌도 다르고 그림에 다가오는 감각도 다를 수 있다. 오늘날 개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개인적인 특성이 강조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각자 느낌이나 생각도 존중되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서로 수용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모든 면에서도 우리 각자 생각이나 느낌이 존중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정말 완전한 교훈이 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사회는 겉잡을 수없는 혼란이 초래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 사회에선 통용되는 규범이어야 한다. 만약에 내 느낌과 감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면 평생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정당하다고 주장하겠는가? 그 사회에 절대 규범이 사라지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법을 만들어야 한다. 옛날에는 문서보다 우리의 양심이 증거였다. 신의와 성실이 계약의 최고 원칙이었다. 이제 그런 원칙이 더 이상 사람들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니 문서화된 더 많은 법으로 사회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문제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이다. 내 본성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죄로 얼룩진 본성으로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본성 곧 중심을 새롭게 하신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죄의 종된 옛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예수님의 형상을 가진 새 본성으로 거듭나게 하셨다. 하나님을 닮은 새 본성을 가질 때에 하나님과 나 자신과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감정과 느낌도 분명 다르게 된다. 좋고 싫은 것, 가치있고 헛된 것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우리 중심에 내가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을 모실 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그리스도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었음을 인식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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