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9 어린 송아지가 부두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왜 이 동요가 생각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어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어렸을 때에 많이 불렀던 동요인데 별 생각없이 재미있어 불렀던 것같다. 그런데 이 동요가 가만히 자꾸 입에서 오르내렸다. 그러면서 왜 어린 송아지가 자기 엉덩이가 뜨겁다고 엄마만 부르고 있지 하고 의문이 생겼다. 처음에는 엉덩이가 따뜻해서 좋았을 것인데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니 어찌하지 못하여 엄마를 부르고 있는 것같은데 왜 엄마만 부르기만 하는가? 그렇게 엉덩이가 뜨거우면 일어나면 되지 않는가? 왜 그냥 앉아서 엄마 엄마 하고 부르기만 하는가? 너무 엄마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가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송아지는 다리에 문제가 있는가보다. 그러니 자기 힘으로 일어나지 못하니 엄마만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 송아지의 안타까움과 절박함이 내 마음에 깊이 느껴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으로 주님 앞에 어린 아이의 모습이라면 이런 어린 송아지와 같이 이렇게 주님만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에서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 때에는 오직 주님만을 부르면서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우리 삶 속에서 만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하면서 더 나아가 그것을 헤쳐 나갈 힘이 없을 때 무엇을 하겠는가? 그 때야말로 오직 주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나의 아집과 고집이 얼마나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가?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데 아직도 나 자신과 싸우고 있고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는 못난 자아 때문에 주 앞에 부르짖고 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의 교회에 주의 백성들에게 내 능력으로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주 앞에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서 조국의 형편을 듣고 보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와 같이 처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주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아마 어린 송아지의 처절한 울부짖는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