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3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 21:15-17

 

15저희가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만나리라 하셨던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갈릴리로 달려갔을 것이다. 해변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과 떡을 준비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뜻하게 초청하시고 저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셨다. 주님은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향하여 세 번 사랑의 질문을 하시면서 사명을 새롭게 하셨다.

1.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다.

1)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 시간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경험하였다. 사탄이 밀까부릇이 그들을 흔들었고 다 도망가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주님을 죽는데까지 따르겠다고 한 장담은 헛 것이 되었다.

2)베드로의 그런 실패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세상에 어느 것과 비교해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하시는 질문같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셨다. 분명 제자가 되려며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고 온 마음과 온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3)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번이나 물으셨다. 이런 질문에 베드로는 주님이 아십니다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이미 주님이 아신다고 하였다. 자신의 고백이 허무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오늘 우리는 주께 어떻게 고백하겠는가?

2.주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다시 사명을 맡기셨다.

1)“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하셨다. 목양 사명을 주셨는데 여기서 양은 주님의 양임을 분명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양들을 예수님의 뜻에 따라 목양해야 함을 의미한다.

2)먹이고 치는 일이 베드로에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먹이는 것은 곧 주님의 영원한 생명의 떡과 생명수이다. 보호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사랑으로 감당하여야 한다 사탄은 언제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려 하지만 오히려 말씀으로 무장하게 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끔 자라게 해야 한다.

3)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신 것은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일 것이다. 이로서 주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기둥으로 세워 주셨다. 배신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믿음을 회복하는 사명을 가졌다.

3.주님의 특별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1)“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예수님이 누구신줄 바르게 고백하는 것은 곧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된다.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산 자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자이다.

2)“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단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신랑이신 주님이 우리를 영원한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기 위해 데리려 오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신부로서 자신을 단장하고 있는가?

3)주님과의 생명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신랑과 신부는 한 몸으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일을 하였다해도 주는 모른다고 하실 수 있다(7:22-23) 그것은 진정 그 마음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이다. 진정한 헌신은 주를 사랑하되 온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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