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허무주의와 문화적 허무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허함은 더 많은 재화로 삶을 개선하여도 인간 정신은 이 부유함이 헛수고처럼 보이는 데 있다.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정복이 우리 내면의 세계의 정복과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부 세계에서 더 많은 성공을 거둘수록 내면세계에서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 허무주의는 무언가 옳거나 참된 것이 있음을 믿기 위한 객관적인 토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부함으로써 또는 개관적인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순하게 생각함으로써 작용한다. 즉 허무주의는 무언가 궁극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런 허무주의가 사람은 아무 것도 확실히 알 수 없고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별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지식은 항상 잠정적인 결과를 갖는 정신적인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본다. 심지어 결국 어떤 것도 사실상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실제 자체에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진리가 기초할 수 있는 그 어떤 실제도 없는 상황에서 인생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니체가 말한 것처럼 권력뿐이다.

이런 공허감은 문학의 세계에서 반영되었다. 카뮈는 혼돈의 문학의 초기의 작가였다. 모든 환영이 벗겨질 때, 인간은 어떤 친밀감도 없는 세계에 버려진 “낯선 사람과 이방인”이라고 느낀다. “추방에는 구제책이 없다”라고 말한다. 즉 의미를 찾는 인간과 응답하지 않는 세계 간의 분열이 존재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고도가 누구인지 그가 실제로 올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데 바로 그 불확실성은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깊은 절망을 반영하고 있다.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로 시작되는 작품은 공허감이 감돈다. 우주에서 거처를 잃어버린 절망감이다. 쿤데라는 공허한 우주에서 사는 인생에 내재된 모호성을 탐색하였다.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목적 없는 성관계, 무의미한 열정을 다룬다. 우연하고 덧없는 삶이 본질이라고 한다. 이런 삶의 단명성이 삶에서 의미를 비우고 삶을 가볍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일에 우리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 부담이 없는 상태는 사람을 공기보다 더 가볍게 하고 절정으로 치솟게 하고 지상 존재에서 벗어나게 하고 절반만 현실적으로 되고 사람의 움직임이 무의미한 것만큼이나 자유롭다.

이런 허무주의에 반기를 든다. 인간에 대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유럽은 우울한 편이지만 미국은 낙천주의자들이다. 실용주의적이다. 전형적으로 쾌활하고 낙관적인 성향은 미국의 표면적인 특성을 반영한다. 미국은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기업가 정신이 있다. 미국의 풍요와 과도한 부유함의 이면은 다르다. 힙스는 “정복할 미개척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성취하려는 덧없는 욕구와 갈망만 잔존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무질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 단편화된 사교계에 사는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표류의 느낌이 버려지지 않는다. 여기에 사람들은 소비하는 상품이 이런 상처에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무방하다는 신념이 표현된다. 이 같은 윤리적 형이상학적 공백 상태, 잔인하게 억압받으면서도 밝고 행복한 낙관론으로 장식된 공허함이 바로 우리의 허무주의다. 허무주의는 우리의 야만성이기도 하며 우리의 실패이기도 하다. 현대의 자아는 상품 구매로 위로 받지 못하고 공허감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온을 누리지 못한다. 자아를 제지하는 궁극적인 존재가 없으면 세계는 불길한 국면에 접어들고 인간은 불안과 공포에 취약하게 된다.

유럽은 허무주의에서 자살을 말하였지만 미국은 허무주의에서 웃음으로 옮겨졌다. 공백은 불변하지만 공백을 어떻게 참고 견디느냐에 하는 차이가 발생하였다.

자의식이 강한 유럽의 초기 허무주의와 미국에서 포스터모더니즘 사회의 문화 기풍으로 등장한 허무주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사람에 체험하는 방식에 차이다. 포스터모더니즘 기조가 정착되면서 문화적인 허무주의는 철학보다는 심리적으로 나타난다. 문화적인 허무주의는 자신만의 심리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기껏해야 종이 두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아로 둘러싸인다. 다른 철학에는 대의와 목표와 목적이 있었다. 실재의 중심에는 공백이 있다고 믿는 문화적인 허무주의에는 그런 것이 없다. 오직 체험, 축재, 일시적인 재미, 개인의 견해, 개인의 선호만이 있을 뿐이다. 문화적인 허무주의는 살면서 숙고해야 할 최종 목적이나 궁극적인 의미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마음 속 텅 빈 공백은 그 자리에 수많은 활동과 소비가 채워짐으로써 시야에서 밀려나는데 이유는 고독은 하나의 위협이요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내면의 공백과 그 공백에서 생겨난 불안을 숨기지 않는다. 활동으로 억압하거나 부유함으로 대신 채우는 경우가 적었다. 오히려 공백은 폭로되고 응시되고 단호히 인정됐다. 그렇지 않으면 기만이자 본질적인 허위로 간주됐다.

의미가 없는 세계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하나님이 망각되고 세계가 공허해지면서 인간은 무시무시한 자유를 넘겨받는다. 모든 윤리적인 명령과 잔존하는 신념을 떨쳐버리는 자유다. 이런 제약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어서 자기 절제가 사라지는 곳에 남아있는 유일한 안전장치는 변변치 못해도 경찰과 법률이다. 세계가 공허해지면 더욱 위험해진다.(웰스의 '위대하신 그리스도' 5장에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8 현대인의 정체성 상실의 모습 이상문목사 2013.12.15 9896
» 철학적 허무주의와 문화적 허무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상문목사 2014.04.13 6477
106 성경이 말하는 명예와 수치 이상문목사 2014.01.05 5407
105 현대인이 ‘인격’보다 ‘개성’을 강조함으로 결과는? 이상문목사 2013.12.01 5398
104 자연 이성외에 궁극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두 가지 대안 이상문목사 2014.05.04 5388
103 인간본성의 실종 이상문목사 2014.02.09 5374
102 전도서에 나타난 삶의 무의미성과 구원론적인 면 이상문목사 2014.04.27 5350
101 개방적 유신론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방식 이상문목사 2014.06.22 5347
100 희망을 상실한 수감자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허무주의자 이상문목사 2014.04.20 5328
99 윤리가 실종된 대표적인 세 가지 사례 이상문목사 2014.01.19 5260
98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교회를 향해 요구하는 것 이상문목사 2014.09.29 5255
97 신흥 영성 현상의 중심과 심리학 이상문목사 2014.03.02 5242
96 전통주의 영성과 포스트모더니즘 영성의 큰 차이점 이상문목사 2013.11.10 5217
95 신학실종 이상문목사 2013.08.19 5175
94 십자가 사역에서 나타낸 이미지 이상문목사 2014.05.25 5113
93 포스트모드니즘의 세 가지 특징 이상문목사 2014.02.23 5111
92 자아숭배의 심각성과 문제점 이상문목사 2014.01.19 5111
91 피녹의 개방적 유신론의 중요한 세 가지 이상문목사 2014.06.15 5100
90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관계 이상문목사 2014.05.18 5076
89 ‘구도자 중심교회’ 또는 ‘마케팅 교회’가 생겨나게 된 다섯 가지 이유 이상문목사 2014.08.03 5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