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26 탑을 쌓아가는 삶

본문: 창11:1-5

“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홍수를 통한 인류의 심판은 노아의 가족 8명만 남겼다. 이들로 인류는 다시 번창해 갔지만 이들도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성취와 영광을 위하여 성과 탑을 쌓아가기 시작하였다. 죄악으로 이미 물든 인간의 마음은 홍수의 심판으로도 지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여 이들을 흩으셨고 한 사람을 불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셨다.

1.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1)자기 보호와 자기 힘의 과시를 통해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 시날 평지에서 성읍을 건설하고 탑을 쌓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높이 쌓아올라가면서 스스로 자기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였다. 집단주의의 힘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2)인간 성취를 통한 자기 영광의 삶은 곧 세속주의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 스스로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은 곧 우상숭배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다. 바벨탑의 꼭대기에는 우상숭배를 위해 제단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스스로 구원을 쟁취해야 하는 자력구원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만나는 것도 자기 행동여부에 달려 있다. 구원도 인간의 승인여하에 달려 있다. 이런 것은 결국 바벨의 문화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3)인간 마음이 혼잡하여 자기 중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 삶이 이미 혼란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죄악된 삶은 이미 그 마음이 죄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면서 자기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노예로 삼아버린다.

2. 하나님은 인류를 흩으시고 한 가정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나가셨다.

1)뭉쳐서 힘을 드려내고 과시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은혜로 흩으신 후에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우상숭배하고 있는 한 가정을 부르셨다. 이들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언약을 이루어나가도록 하셨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2)아브라함의 순종은 곧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어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시는 우리 주님을 생각하게 만든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는 십자가의 모진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거절과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시기 위해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순종의 기도였다. 이로서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긴 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십자가의 죽음에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셨다.

3)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은 보잘것없어 보인다. 정말 겨자씨같이 너무 작아 보기도 힘든 씨앗이지만 그것으로 썩어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님 한 분 곧 겨자씨같은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

3.참된 인간은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1)인간 욕망으로 뭉치면 망하고 만다. 마음 자체가 중심이 없이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2)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됨으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균형잡힌 참된 인간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의 빛나는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 그 이름을 부르시면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인간 존엄성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 최고로 높여진다.

3)우리가 받은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함으로 참된 기쁨과 보람을 가지게 된다. 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어도 하나님은 인간이 주신 재능까지 거두지 아니하셨다. 그 재능으로 세상의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셨다. 이들이 세상 문화를 이루어나가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의 결과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 영광을 위한 목적이 분명할 때 우리 삶은 영원과 연결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3 201011 지체를 죽이라(삼상15:32-36) 이상문목사 2020.10.23 37
332 201004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18-23) 이상문목사 2020.10.15 49
331 200927 아말렉을 진멸하라(삼상15:1-3) 이상문목사 2020.10.15 75
330 200920 사울의 경솔한 금식령(삼상14:27-30) 이상문목사 2020.10.01 49
329 200913 부득이하게 드린 번제(삼상13:8-12) 이상문목사 2020.10.01 59
328 200906 참된 왕은 누구인가? 이상문목사 2020.09.18 44
327 200830 미스바로 모이라(삼상7:5-10) 이상문목사 2020.09.11 48
326 200823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소 이상문목사 2020.09.04 64
325 200816 이가봇(삼상4:19-22) 이상문목사 2020.09.04 38
324 200809 한나의 기도(삼상2:1-5) 이상문목사 2020.08.19 50
323 200802 사무엘이 태어남(삼상1:15-20) 이상문목사 2020.08.19 21
322 200726 기업무를 자(룻4:7-10) 이상문목사 2020.08.05 39
321 200719 마라라 부르라(룻1:19-22) 이상문목사 2020.07.30 84
320 200712 사사시대의 타락상(삿19:27-30) 이상문목사 2020.07.23 44
319 200705 단 지파의 죄악상(삿18:27-31) 이상문목사 2020.07.15 49
318 200628 자기 소견대로(삿17:1-4) 이상문목사 2020.07.08 48
317 200621 사사 삼손(삿13:1-5) 이상문목사 2020.07.08 46
316 200614 사사 입다(삿11:1-7) 이상문목사 2020.06.28 79
315 200607 사사 기드온(삿6:11-14) 이상문목사 2020.06.28 46
314 200531 드보라의 노래(삿5:1-7) 이상문목사 2020.06.28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