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9 율법이 죄인가, 죄가 죄인가?(롬7:7-13)
2026.08.14 19:44
제목: 율법이 죄인가, 죄가 죄인가?
본문: 로마서 7:7-13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서론: 오해받는 율법을 변호하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과 7장 초반을 통해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며, 율법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또 다른 오해와 반론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율법이 악한 것인가?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사망으로 몰아가니, 율법 자체가 죄란 말인가?" 사도 바울은 7절에서 단호하게 외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하는 선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다면 왜 선한 율법이 우리에게 사망처럼 느껴졌는지,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얼마나 교묘하게 율법을 이용했는지를 밝혀줍니다. 말씀을 통해 죄의 정체를 똑똑히 파악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붙드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율법의 첫 번째 기능: 죄의 본질을 진단하는 거울 (7-10절)
율법은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죄를 밝히 드러내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죽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영적 현미경이자 거울입니다.
죄를 알게 함: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7절a). 세상 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판결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동기와 마음까지 조명합니다. 바울은 열 번째 계명인 "탐내지 말라"를 예로 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지 않으면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율법은 마음 깊은 곳에 꿈틀거리는 ‘탐심’ 자체가 하나님 앞에 중대한 죄임을 깨닫게 합니다.
산상수훈으로 계명을 완성하신 주님: 바울이 율법의 참된 영적 의미(마음의 영역)를 깨닫기 전, 바리새인 시절에는 스스로 율법의 행위로 ‘살았다’(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것처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요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임을 깨닫는 순간, 바울의 착각은 깨졌습니다.
"계명이 이르매 나는 죽었도다": 율법의 진정한 내적 의미가 마음에 부딪쳐 오자,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의인이 아니라, 죄와 허물로 이미 죽어 마땅한 참담한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계명이 자신의 무능과 죄로 인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2. 죄의 가공할 권세: 계명을 지렛대 삼아 나를 속이는 죄 (8, 11절)
본문의 진짜 범인은 율법이 아니라,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권세’입니다.
계명을 작전본부로 삼는 죄: 8절과 11절에서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기회를 타서'라는 말은 군사 용어로, ‘작전 개시의 출발점, 작전본부, 지렛대’를 의미합니다. 죄는 참으로 영악하고 교묘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를 공격합니다.
하지 말라고 할 때 더 하고 싶어 하는 타락한 본능: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선포되면, 죄는 우리 안의 본능(식욕, 명예욕, 성욕, 지식욕)을 자극하여 "왜 하지 말라고 하지?"라는 사악한 호기심과 반발심을 부추깁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에게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이용해 선악과를 탐스럽게 보이도록 속였던 것과 똑같습니다.
속이고 죽이는 죄: 죄는 "이것을 취해도 죽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움과 자유를 줄 것이다"라며 끊임없이 우리를 속입니다. 그리고 선한 계명을 역 이용하여 결국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내어주게 만들고, 우리를 사망으로 밀어 넣습니다.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니라, 율법마저 악용하는 우리 안의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3. 율법이 준 최종 목적: 죄로 심히 죄 되게 함 (12-13절)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죄에게 이용당하기까지 하는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율법의 선함과 거룩함: 12절을 선포합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은 하나님의 완벽한 표준이며 거룩의 기준입니다.
죄의 민낯을 폭로함: 1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몽학선생(초등교사)으로서의 율법: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스스로 의를 쌓아 구원받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선한 율법에 부딪혀 사악하게 발악하는 죄의 가공할 정체를 선명하게 폭로함으로, ‘죄로 심히 죄 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아, 내 힘과 내 의지로는 이 죄를 이길 수 없구나! 나는 율법을 지킬 능력이 전혀 없는 파산한 존재구나!"를 철저히 고백하고, 나를 구원하실 유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결론: 자기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숨으십시오
오늘 말씀은 스스로의 힘으로 도덕적이고 선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세상의 종교적 열심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줍니다. 율법을 가지고 자신을 증명하려 할수록, 죄는 그 율법을 지렛대 삼아 우리를 더 깊은 정죄와 낙심 속으로 빠뜨릴 뿐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율법의 기준마저 무너뜨리고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는 죄악의 홍수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참된 의미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겸손히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의가 되십니다!"
이 겸손한 고백으로 나아가십시오.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 그늘 아래 피하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행위와 의를 의지하는 묵은 삶을 버리고,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만을 의지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