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9 주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도 바울이 고전13장에서 사랑을 정의하고 있다. 이는 사랑은 우리의 감정이나 이성적 사고를 뛰어넘는 적극적인 행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기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랑이라 하는 단어에 자기 이름으로 대치해 본다면 과연 누가 이런 사랑으로 다른 이웃을 대하고 있다고 말할 자가 있겠는가? 이것을 읽으면서 이런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보다 이런 사랑과 먼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이 오히려 진실된 반응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계속 우리는 매번 이것을 읽으면서 이런 사랑을 갈구하면서 자신을 다구치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과연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는가? 우리는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교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교회는 바울편, 아볼로편, 게바편 심지어 그리스도편으로 다투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이며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부르고 있다. 여러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들로 인해 서로 자랑하며 자기 은사가 크다고 주장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런 교회를 향하여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사랑을 행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사랑이라 말하고 있는 것에 나의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꾸어보면 이 사랑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랑으로 부족하여 연약한 인간을 대하신 주님을 보게 된다. 이제 이 사랑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넘어지기를 잘하는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내가 받은 사랑이 이런 사랑이었다. 우리가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죄인이며 연약하며 원수같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어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이다. 이 사랑이 우리 마음에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 먼저이다. 받은 것이 있어야 내어줄 수 있다. 없는데 주려고 하면 외식이 되고 가식이 된다. 먼저 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될 때에 이웃을 향하여 이런 사랑을 조금이나마 흐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주의 사랑에 푹 빠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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