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23 고운 가루같이

2019.06.29 18:43

이상문목사 조회 수:531

190623 고운 가루같이


소제의 제물은 고운 가루였다. 땅에서 나는 것으로 바친 소제는 피 없는 제사로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봉사를 의미하였다. 제물을 드리는 자는 이 고운 가루를 드리면서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려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실제 이 제사로서 하나님께 온전한 삶이 되지 못하였다. 제사로서 사람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삶이 새롭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정말 그렇게 하나님께 완전한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제사자는 정말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고운 가루같이 완전히 자신을 부인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자신을 드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자신이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으니 그리스도의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고운가루같은 우리 삶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히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힘쓰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 삶은 어떠한가? 고운 가루같은 삶이 아니라 죄악의 알갱이가 아직 마음 속에 박혀 있지 아니한가?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표해서 사셨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고 우리에게 의를 입혀 주셨다. 그런 생애를 통해 소제를 성취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모난 인격 속에 모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온전한 삶을 바치지 못한다. 얼마나 모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은가? 하나님은 그런 이들을 고운 가루로 빻아가기 위해 역경과 고난을 주신다. 세상의 어려움에 자신이 부셔지고 그 인격이 예수님의 마음 즉 온유한 마음을 조금씩 닮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자아를 얼마나 부추기고 있는가! 자신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선이고 자신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런 풍조는 교회 안에도 들어와 참된 복음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가져야 할 인격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다. 그러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자기 사명을 잃어버렸다. 세상과 같이 욕망의 종이 되어 버렸다. 우리 심령이 부셔져야 할 죄의 덩어리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이 소제물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건 것을 향상 기억하고 고운 가루 같은 삶이 되도록 힘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