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11 죄의식과 수치심

본문: 창2:21-25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로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더라"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을 닮은 인격자로서 창조하셨다. 아담과 화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이는 감추는 것이 없었고 하나님 앞에서나 상대방에게 흠이 순결하였음을 의미한다. 뱀의 유혹을 받아 먹지 말라한 실과를 먹은 후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무의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가렸다. 이 부끄러움이 하나님 앞에 죄지은 인간의 마음이다.

1. 죄의식과 수치심은 다르다.

1)죄의식은 하나님 앞에 가지는 인간의 마음 상태이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억하는 것,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빗나는 것,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 등을 의미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반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2)이것은 인간의 죄된 본성을 나타내 준다. 본성은 모든 인간의 마음 상태이며 객관적이다. 이것은 양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의 윤리 의식을 창조시부터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의 반향이기도 하다. 본성의 목표는 정결함이다. 죄로 더럽혀진 본성을 어떻게 깨끗이 할 수 있겠는가?

3)수치심은 이 본성의 죄의식하고는 다르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한다.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관계된 마음 상태이다. 남이 자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매우 주관적이다. 이것은 느낌이 좋고 나쁘냐에 중심이 된다. 자아의 목표는 명예와 영광이다.

2. 오늘 시대의 관심은 본성에서 자아로 바뀌어졌다.

1)포스트모더니즘의 이 시대에는 본성에 대한 관심에서 자아에 대한 관심으로 대치되었다. 하나님이 관심에서 사자리고 객관적 윤리 도덕 의식이 사라진 이 시대엔 오로지 자기 개성과 가치가 중요시되고 자기 만족과 자기 성숙과 자기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2)죄의식은 더욱더 우리 마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죄에 대한 관념은 실수나 질병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니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아의 좋고 나쁘게 느끼는 감정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병든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보충해 주고 치료하면 새롭게 된다고 여긴다.

3)문제는 이런 현대 문화의 포스터모더니즘의 경향이 교회 안에서도 들어와 죄에 대한 감각을 둔해지고 자아 만족과 기쁨과 쾌락을 추구하는 사이비 복음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는 인간의 본질의 문제 즉 죄와 하나님과 관계의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3. 수치심에서 본성의 문제로 돌아가라

1)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은 무엇이었는가? 아담의 죄는 우리 본성을 물들게 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발가벗겨 달리심으로 만천하에 부끄러움을 다 받으심으로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2)세상 문화가 날로 강조하는 자아는 오히려 부인해야 할 대상임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못박혔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고 하신 예수님이시다. 이는 오늘 현대 문화가 강조하는 자아만족이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가를 가르쳐 준다.

3)자아 만족과 자기 주장과 자기 영광은 오직 이 세상에서만 있다. 이것은 결국 사라질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십자가로 우리에게 주신 새 인격 새 본성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과 기쁨을 누리게 한다. 오늘 수치심을 가지는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 안에 있는 새 본성을 받아 하늘의 영생복락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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