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8 향유를 부은 마리아

본문: 12:1-8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니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 7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앞서 올라가면서 예루살렘에 가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주겠고 그는 죽임을 당하나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드디어 베다니에 도착하였고 그를 위하여 문둥이 시몬 집에서 잔치가 있었고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

1. 마라아의 행동에 가룟 유다는 책망을 하였다.

1)이미 예수님은 체포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베다니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그런 상황에서 마리아는 지극히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온전히 부어드렸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담긴 표현이었다.

2)이런 행동에 제자 중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하였다. “이것을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한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가룟 유다가 이렇게 말한 것은 도덕이고 돈 궤에서 훔쳐가기 때문이라 하였다.

3)마리아는 오직 예수님만이 보였고 가룟 유다는 돈만이 보였다. 마리아는 자기 헌신이었고 가룟 유다는 자기 욕심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이후 마가복음에서는 가룟 유다가 곧 바로 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고 그들은 돈을 주기로 약속하는 일이 기록되어져 있다.

2. 향유 사건에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키셨다.

1)예수님은 제자들의 책망을 막으시면서 오히려 마리아의 이 같은 행동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말하여 기념하리라 하셨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내어놓음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죄인을 사랑함이요 아버지에게 온전히 순종함이요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는 일이었다.

2)주님의 철저한 순종과 사랑, 마리아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가! 그래서 주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마리아의 이 행동이 말해질 것이라 하였다. 바로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이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3)마리아가 향유를 그렇게 부은 것이 낭비나 허비인가?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흘리신 것이 자신의 생명을 낭비한 것이 아닌가? 낭비나 허비란 말은 무슨 기준에서 한 것인가? 사랑에는 낭비나 허비가 있을 수 없다. 우리 삶을 다한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는 낭비가 될 수 없다.

3. 우리는 가룟 유다 편인가 마리아 편인가?

1)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까지 우리씩으로 평가하지는 않는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보고 평가하지는 않는가? 선교와 전도는 결과 없이 끝나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 한 마디 못하고 순교하였는가! 그러나 절대로 그들의 인생이 허비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2)옥합은 우리 자신을 상징할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같이 너희도 살아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2)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 자신을 주께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조차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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