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6 기업무를 자(룻4:7-10)

2020.08.05 20:40

이상문목사 조회 수:39

200726 기업 무를 자

본문: 4:7-10

 

 

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9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룐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10또 말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모압에서 남편과 두 아들과 재산을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은 당장 먹을 끼니도 어려웠다. 그래서 룻이 이삭을 주워 시어미를 봉양하였다. 그를 통해 보아스를 만났고 보아스는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려 온 룻에게 상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기업 무를 자였다.

1. 기업 무를 자의 의무는 무엇이었나?

1)기업 무를 자 곧 고엘 제도는 가난하여 기업의 땅을 팔거나 종이 된 사람의 형제나 친족이 된 자가 땅 값을 치르고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돌리게 하거나 종이 된 자를 속량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 주는 제도이다. 그래서 구숙자 또는 보호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기업의 땅을 팔았을 경우에 오직 형제나 친족이 대신 지불하여 그 땅을 되돌리게 한 것은 기업의 땅이 오직 자기 지파의 땅으로 가질 수 있게 함이고 종이 자유되게 함도 언약의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변경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3)고엘이 되기 위한 자격이 있었다. 먼저 땅을 판 자나 종이 된 자의 형제나 친족이 되어야 했다. 그것을 무를 수 있는 재력도 갖추어야 했고 더 나아가서 그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도 있어야 했다.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 보다 먼저 된 자가 있었지만 그는 자기 기업에 해가 될까 해서 보아스에게 미루었다.

2.기업 무를 자 보아스는 장래 우리의 영원한 고엘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해 준다.

1)그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다. 그 뿐 아니라 엘레멜렉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유력한 자 곧 부유한 자였다. 룻이 이삭을 추수가 끝나기까지 자기 밭에서 떠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많은 토지를 가진 부자였음을 보여준다. 시레 보아스는 살몬과 라합의 아들이었고 살몬의 아버지 나손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를 세울 때 유다 지파의 우두머리였다. 힘과 부를 가진 가문이었음을 보여준다.

2)더 나아가서 룻에 대한 소문을 듣고 룻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고엘로서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었고 친족을 위해 기업을 무르고 그 이름을 이어가게 위해 룻을 사서 자기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는 장차 우리의 영원한 고엘이 되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예표적인 인물이었다.

3.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고엘이 되어주셨다.

1)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자유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언약을 주신 분이 하나님, 언약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성자 하나님이시다. 출애굽의 역사를 이끄신 분도, 십게명을 주신 분도, 장차 인간이 되시어 우리의 고엘이 되신 분도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2)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고엘이 되어 주셨다.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다시 돌아갈 능력이 없는 죄인이 우리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셨다(2:11)그리고 우리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다 이루었다하신 것은 곧 다 지불하였다라는 의미다.

3)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로 삼으셨다. 룻을 사서 아내로 삼았던 보아스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그의 피로 사서 그의 신부로 삼으셨다.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하는 그의 머리다. 주와 우리는 뗄 수 없는 한 새 사람이다. 그런 은혜를 받은 자로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3 201011 지체를 죽이라(삼상15:32-36) 이상문목사 2020.10.23 37
332 201004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18-23) 이상문목사 2020.10.15 49
331 200927 아말렉을 진멸하라(삼상15:1-3) 이상문목사 2020.10.15 75
330 200920 사울의 경솔한 금식령(삼상14:27-30) 이상문목사 2020.10.01 49
329 200913 부득이하게 드린 번제(삼상13:8-12) 이상문목사 2020.10.01 58
328 200906 참된 왕은 누구인가? 이상문목사 2020.09.18 44
327 200830 미스바로 모이라(삼상7:5-10) 이상문목사 2020.09.11 48
326 200823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소 이상문목사 2020.09.04 64
325 200816 이가봇(삼상4:19-22) 이상문목사 2020.09.04 38
324 200809 한나의 기도(삼상2:1-5) 이상문목사 2020.08.19 50
323 200802 사무엘이 태어남(삼상1:15-20) 이상문목사 2020.08.19 21
» 200726 기업무를 자(룻4:7-10) 이상문목사 2020.08.05 39
321 200719 마라라 부르라(룻1:19-22) 이상문목사 2020.07.30 84
320 200712 사사시대의 타락상(삿19:27-30) 이상문목사 2020.07.23 44
319 200705 단 지파의 죄악상(삿18:27-31) 이상문목사 2020.07.15 49
318 200628 자기 소견대로(삿17:1-4) 이상문목사 2020.07.08 48
317 200621 사사 삼손(삿13:1-5) 이상문목사 2020.07.08 46
316 200614 사사 입다(삿11:1-7) 이상문목사 2020.06.28 79
315 200607 사사 기드온(삿6:11-14) 이상문목사 2020.06.28 46
314 200531 드보라의 노래(삿5:1-7) 이상문목사 2020.06.28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