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3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소

본문: 삼상6:7-12

 

 

7그러므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10그 사람들이 그 같이 하여 젖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여호와의 궤와 및 금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

 

블레셋과의 전투 곧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법궤까지 빼앗겼다. 블레셋은 그 법궤로 인해 큰 재앙을 만났다. 에글론과 가드와 에그론에서 엄청난 독종의 재앙을 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래서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 주기로 결정하고 젖먹는 송아지를 가진 어미소 둘로 수레를 끌게 하고 벧세메스로 보냈다.

1.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어미소의 순종을 보라

1)송아지를 뒤로 하고 어미소는 울면서 이스라엘 땅 베세메스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갔다. 어미소에게 있어서 어떻게 송아지를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보다 귀중한 것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가져가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어미소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셨을 것이다.

2)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한 일이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부모 장례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다. 어미소는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일을 위해 울면서도 순종하며 나아갔다. 이런 철저한 순종이 이스라엘에게 요구되었던 것이다.

3)어미소는 벧세메스로 똑바로 나아가서 큰 바위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수레를 화목삼아 벧세메스 사람들은 어미소를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어미소는 모든 것을 희생하였다. 이로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심을 보여주셨다.

2.사명을 위해 순종한 믿음의 사람들의 예를 보자

1)예레미아의 순종을 보자 예레미아가 유다 백성에게 외쳐야 하는 것은 회개였고 유다의 멸망이었다. 그가 말하면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기 되니 사람들이 예레미아를 많이 핍박하였다. 그래서 그 치욕과 모욕을 참을 수 없어서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그 속이 불 붙는 것같아서 견딜 수 없어 다시 외쳐야 했다.

2)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핍박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는 주께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바쳐 순종하고자 하였다.

3)우리 예수님의 순종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게 되는 근원이 되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결심하셨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셨다. 이런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소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순종을 예표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3.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순종은 필수적인 것이다.

1)참된 믿음은 순종을 포함하고 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2:36)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1:5) 야고보나 사도 바울이나 믿음과 순종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씀하였다. 진정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주께 순종하여야 한다.

2)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는 모두 죄 아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셨다. 인류의 비극의 원인이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에 있었다면 인류의 구원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믿는 자에게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께 순종함에 있다.

3)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순종은 때로 울면서 해야 할 일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늘 기뻐하라고 권면하였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하늘의 비교할 수 없는 복이 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힘들더라도 장래를 생각하면서 오직 주님께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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