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6 죄 아래 팔린 나(롬7:14-17, 21-25)
2026.08.28 13:59
260816 죄 아래 팔린 나, 곤고한 자의 탄식과 구원
본문: 로마서 7:14-17, 21-25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시인하노니 17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서론: 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전쟁]
우리는 지난 시간에 율법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선한 것이며, 우리 안에 거하는 ‘죄’가 교묘하게 율법을 이용해 우리를 속이고 사망으로 몰아갔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하나님의 신령한 법인 줄을 마음에 깨닫고, 그 법대로 살기를 열망하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내면, 혹은 율법의 신령함을 깨달았으나 아직 은혜의 완성을 누리지 못하는 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현미경처럼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지만 매번 죄 앞에 무너지는 나, 선을 원하지만 악을 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절망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안의 죄성을 진단하고, 나를 이 비참함에서 건져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두 마음의 충돌: 선을 원하는 속사람 vs 죄 아래 팔린 겉사람 (14-20절)
본문에 등장하는 ‘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율법이 신령하고 선하다는 것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비극이 일어납니다.
원함은 있으나 행함이 없는 비극: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15절). 그는 하나님의 법을 좇아 거룩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삶에서 열매 맺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혐오하는 죄악입니다.
죄 아래 팔린 존재: 바울은 이 상태를 14절에서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탄식합니다. '팔렸다'는 것은 노예 시장에서 주인에게 팔려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주인의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노예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의 권세: 17절과 20절에서 그는 비로소 내면의 원인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의 원함은 있지만, 우리 육신에 거하는 죄의 강렬한 소요와 정욕이 내 선한 의지를 짓밟고 나를 죄의 도구로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2. 패배의 법칙: 내 지체 속에서 역사하는 죄의 법 (21-23절)
사도 바울은 자기 내면의 갈등을 유심히 관찰한 후,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깨뜨릴 수 없는 가공할 영적 법칙 하나를 발견합니다.
① 마음의 법 (속사람의 열망)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22절). 우리 마음 중심(속사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거룩함을 찌르고 나아가려는 거룩한 열망과 '마음의 법'이 존재합니다.
② 죄의 법 (지체 속의 강력한 원리)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23절).그러나 우리의 육신과 지체 속에는 죄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이 '죄의 법'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권세이자 법칙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아무리 결단하고 다짐해도, 이 죄의 법은 마치 창칼을 들고 위협하는 장수처럼 나를 포로로 사로잡아 결국 죄를 짓게 만듭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이 선인가"를 가르쳐 주지만, 그 선을 행할 "힘"을 주지는 못합니다. 의지로 죄를 이겨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내 지체 속의 죄의 법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내가 죄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만 뼈저리게 확인하게 될 뿐입니다.
3. 절망의 탄식에서 터져 나오는 구원의 감사 (24-25절)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싶으나, 육신으로는 죄의 법에 종노릇하며 매번 실패하는 인생이 다다르는 최종 고백은 무엇입니까?
처절한 영적 비명 (24절):"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곤고하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매를 맞고 고문당해 완전히 지쳐 파산한 상태를 뜻합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이 '사망의 몸(죄의 시체)'을 벗어던질 수 없음을 깨달은 자의 처절한 비명입니다. 율법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완벽한 무능을 깨달은 자만이 이 탄식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반전의 감사와 찬양 (25절a): 바로 그 순간, 사도 바울의 입에서 반전의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절망의 음침한 골짜기 끝에서, 바울의 시선은 자기 자신의 무능에서 나를 구원하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동합니다! 내 힘으로는 죄의 법을 이길 수 없지만,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완벽하게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이율배반적인 모습—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모습—은 율법 아래서 자기 의로 버텨보려는 모든 인간의 솔직한 초상화입니다.
혹시 오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왜 결단하고도 또 죄 앞에 무너질까?"라며 깊은 자괴감과 죄책감에 빠져 계신 성도님이 계십니까? 그 깊은 탄식과 절망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힘과 의지를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과정입니다.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십시오! "나는 곤고한 자입니다. 내겐 소망이 없습니다"라고 겸손히 고백하십시오.
바로 그 나락의 지점에서,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 손을 잡으십니다. 율법의 정죄와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행위와 의지를 의지하다 낙심하지 말고, 나를 위하여 죄의 사슬을 끊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감격과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