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30 육신의 길, 영의 길

본문: 로마서 8:5-8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느니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서론: 두 종류의 사람, 두 개의 영적 세계]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나 학벌, 재산이나 도덕적 기준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과 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바로 육신을 따르는 자영을 따르는 자입니다.中间 지대나 중립 구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4절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감격스러운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5절부터는 그 은혜를 입은 성도가 과연 어떤 존재이며, 반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비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지경에 있는가를 선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마음과 삶이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추구하고 있는지 영적으로 진단하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내어 생명과 평안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생각과 관심의 대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5)

사도 바울은 비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첫 번째 기준으로 생각(마음의 지향점)’을 제시합니다."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5).

육신을 따르는 자 (비그리스도인):여기서 '육신(Flesh)'은 우리 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허물과 죄로 영이 죽어있는 비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므로, 본능적으로 육신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아가며 '육신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단지 머리로 떠올리는 것을 넘어, 마음의 애정과 관심, 목표와 가치관 전체가 그것에 매여 있음을 뜻합니다. 세상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리고 하나님 없는 자기 만족과 자기 영광에 몰두해 살아갑니다.

[일반 예화: 돼지와 독수리의 시선]땅만 바라보는 돼지는 바닥에 떨어진 사료와 오물에만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은하수가 펼쳐져도 땅의 것에만 목을 매고 살아갑니다. 반면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저 높은 차원의 세상을 바라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아무리 세상에서 교양 있고 도덕적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의 시선은 하나님 없는 땅의 것(육신의 일)’에만 매여 있습니다.

영을 따르는 자 (그리스도인):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의 생각과 관심은 하나님의 뜻, 십자가의 은혜, 말씀, 영혼 구원, 하나님 나라라는 영의 일에 온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성경적 예화: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책망 (16)]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 수난 소식을 들었을 때 "절대로 주님께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라며 말렸습니다. 인간적인 정으로 한 말 같았으나, 주님은 즉시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육신의 생각과 사람의 계산에 이끌리는 순간, 그것은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입니다.

2. 비그리스도인(육신에 있는 자)을 향한 하나님의 세 가지 평가 (7-8)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상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지라도, 그리스도 없이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성경은 가혹하리만큼 냉정하고 비극적인 진단을 내립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7a)

육신을 좇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만족과 정욕을 추구하기에,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탄의 세력 아래 매여 있는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에 있습니다.

[일반 예화: 정밀하게 만들어진 우상 공장]종교개혁자 칼뱅은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육신의 마음은 겉으로는 고상한 예술, 학문, 철학, 선행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깊은 중심에는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명예'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7b)

영이 죽어있는 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하며, 신령한 진리를 미련한 것으로 여깁니다(고전 2:14). 타락한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믿음의 자리가 없는 삶오직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해도 창조주 하나님께 단 1초도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적 예화: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4)]가인은 자신이 땀 흘려 수고한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믿음) 없이, 자신의 육신적 열심과 자기 의로 나아오는 자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3. 두 삶의 최종 결과: 사망 vs 생명과 평안 (6)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길과 영을 따르는 길이 다다르게 될 최종 종착역을 선포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6)

육신의 생각의 결과 = 사망:육신에 매여 사는 삶의 끝은 영원한 사망(지옥 형벌)입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비그리스도인은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삶 자체가 이미 사망의 그늘에 덮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떠나 어둠을 더 사랑하며, 죄의 삯인 사망을 향해 매일매일 달려가고 있는 비참한 상태입니다.

영의 생각의 결과 = 생명과 평안:반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두 가지 가슴 뛰는 선물이 주어집니다.

생명: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내 안에 역사하여 영원한 천국 영생을 누립니다.

평안: 죄와 사망의 정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하늘의 안식과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성경적 예화: 풍랑 속에서 잠드신 예수님과 제자들 (4)]광풍이 불어 배가 뒤집힐 위기 속에서 제자들은 육신의 생각(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창조주의 영적인 평안함 속에 평안히 안식하고 계셨습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자에게는 세상의 풍파와 고난 속에서도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명과 평안'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결론: 영의 길을 걷는 거룩한 감사]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비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의 화려함 뒤에 얼마나 비참한 사망의 그늘에 놓여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지내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2:3).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사, 육신에 매여 살던 우리를 생명과 평안의 길, 영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성도로서 우리의 시선은 이제 어디를 향해야 하겠습니까?

더 이상 이 썩어질 세상의 육신의 일에 내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날마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의 일을 생각하며 생명과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육신에 매여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안타까운 이웃들에게, 나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복된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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