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9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주님께서 모범적인 기도 예를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이다. 짧은 이 기도문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계신다. 물론 이것을 주님은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해서 기도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짧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먼저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기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다해 기도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주기도문에서 그래서 가장 마음에 쓰이는 부분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그 정도를 보아서 우리 죄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사 하는 기도인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게 될 것인가? 우리가 한 것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다면 이것은 결국 율법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행동여하에 따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도 주어진다면 과연 누가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주님이 이런 의도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인가?

절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죄 용서는 우리의 행동에 달린 것이아니라 주님께서 우리 죄값을 지불해 주시기 위해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분명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두렵고 큰 것인가를 알고 있는 자이다. 그리고 그 죄를 주님께서 용서해 주셨음을 깨달은 자이다. 자신이 너무나 큰 죄를 예수님으로 인해 용서받았음을 알고 있다면 자신에게 아주 작은 잘못한 이들을 용서해 주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용서받은 은혜의 마음을 경험한 자만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이 자신에게 한 잘못을 용서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그렇게 용서받은 자가 아직도 죄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빌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만 달란트 빚을 주인에게서 탕감받은 종이 그 은혜를 안다면 자기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 형제를 왜 탕감해 주지 못하겠는가? 이런 은혜 안에 있는 자로서 하나님께 죄용서의 기도를 드리라고 하신 것이다